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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r: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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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쓴 것이 없단 말이야요―무식하단 말씀이야요."
형식은 껄껄 웃으며,
"노형께서 조곰 모르셨습니다. 배학감은 백지가 아니라, 흑입니다. 검은 종이입니다."
"어째서요?"
"백지나 같으면 아직은 쓴 것이 없어도 장차야 쓸 수가 있지요. 그렇지마는 흑지는 장차 쓸 수도 없습니다" 하고 서로
 웃은 일이 있었다.
배학감은 또 규칙을 좋아한다. '규칙적'이란 말과 '엄하게'라는 말은 배학감의 가장 잘 쓰는 말이었다. 취임 후 얼마
 아니하여 친히 규칙을 개정하였다. 개정이 아니라 이전 있던 규칙은 교육의 원리에 합하지 아니하여 폐지하고 자기의 신
학설을 기초로 하여 온통 이백여 조에 달하는 당당한 대규칙을 제정하였다. 어느 날 직원 회의에 교원 일동을 소집하고 
친히 신규칙의 각 조목을 낭독하며 일일이 그 규칙의 정신을 설명하였다. 오후 한시에 시작한 것이 넉점이 지나도록 끝이
 나지 못하였다. 배학감은 이마와 코에 땀이 흐르고 목이 쉬었다. 교원 일동은 엉덩이가 아프고 허리가 아파 연방 엉덩
이를 들먹들먹하였다. 어떤 교원은 고개를 푹 숙이고 코를 골다가 학감의 대갈일성에 깊이 든 꿈을 놀라기도 하고, 어떤
 교원은 문을 홱 닫치고 뒷간에 한번 간 후에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그때에 형식은 참다 못하여, "그것은
 학교 규칙이 아니라 한 나라의 법률이외다그려" 하고 그 조목이 너무 많음을 공격하였다. 자리에 있던 오륙 인―뒷간에
 가고 남은―교원은 일제히 형식의 말에 찬성을 표하였다. 그러나 학감의 직권으로 이 규칙이 확정이 되었다. 배학감과 
일반 교원 및 학생과의 갈등이 심하여진 것은 이때부터라.
형식은 분해하는 김종렬을 향하여,
"그러나 그런 온당치 못한 일을 해서야 쓰겠나. 참아야지."
"아니올시다. 벌써 삼 년 동안이나 참았습니다" 하고 기어이 배학감을 배척하고야 말려 한다. 김종렬은 말을 이어,
"이렇게 이백여 명 용감한 청년들이 동맹을 체결하였는데 이제는 일보도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주께서 허하지 아니하시면 할 수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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