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re · 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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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eur: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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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것은, 가슴속에 이상한 불길이 일어남이니, 이는 청년 남녀가 가까이 접할 때에 마치 음전과 양
전이 가까워지기가 무섭게 서로 감응하여 불꽃을 일리는 것과 같이 면치 못할 일이며, 하늘이 만물을 내실 때에 정한 일
이라, 다만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도덕과 수양의 힘으로 제어할 뿐이니라. 형식이 말없이 앉았는 양을 보고 장
로가 선형더러,
"얘, 지금 곧 공부를 시작하지. 아차, 순애는 어디 갔느냐. 그애도 같이 배워라. 나도 틈 있는 대로는 배울란다."
"녜" 하고 선형이가 일어나 저편 방으로 가더니 책과 연필을 가지고 나온다. 그 뒤로 선형과 동년배 되는 처녀가 그
역시 책과 연필을 들고 나와 공순하게 읍한다. 장로가, "이애가 순애인데 내 딸의 친구요. 부모도 없고 집도 없는 불
쌍한 아이요" 하는 말을 듣고 형식은 자기와 자기의 누이의 신세를 생각하고 다시금 순애의 얼굴을 보았다. 의복 머리를
선형과 꼭 같이 하였으니 두 사람의 정의를 가히 알려니와, 다만 속이지 못할 것은 어려서부터 세상 풍파에 부대낀 빛
이 얼굴에 박혔음이라. 그 빛은 형식이가 거울에 자기 얼굴을 볼 때에 있는 것이요, 불쌍한 자기 누이를 볼 때에 있는
것이라. 형식은 순애를 보매 지금껏 가슴에 설렁거리던 것이 다 스러지고 새롭게 무거운 듯한 감정이 생겨 부지불각에
동정의 한숨이 나오며 또 한번 순애를 보았다. 순애도 형식을 본다.
장로와 부인은 저편 방으로 들어가고 형식과 두 처녀가 마주앉았다. 형식은 힘써 침착하게,
"이전에 영어를 배우셨습니까."
하고, 이에 처음 두 처녀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러나 두 처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대답이 없다. 형식도 어이없
이 앉았다가 다시,
"이전에 좀 배우셨는가요."
그제야 선형이가 고개를 들어 그 추수같이 맑은 눈으로 형식을 보며,
"아주 처음이올시다. 이 순애는 좀 알지마는."
"아니올시다. 저도 처음입니다."
"그러면 에이, 비, 시, 디도......? 그것은 물론 아실 터이지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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