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ek · 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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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eur: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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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채의 눈에는 여름낮 볕을 받은 푸른 산이 보이고 밀과 보리의 누른 물결과, 조와 피의 푸른 물결도 보인다. 풀의 향
기를 품긴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가고 모시 적삼의 틈으로 불어 들어와 땀 나는 살을 서늘하게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도리어 영채에게 일종의 쾌감을 주었다. 그래서 영채는 꿈꾸는 사람 모양으로 안 보이는 것을 보려고도, 보이는 것을
안 보려고도 아니 하고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고, 귀에 들어오는 대로 들었다. 그러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 것이며, 무
엇 하러 가는 것도 몰랐다.
그러나 이따금 나는 죽으러 간다는 생각이 난다. 그러면 영채는 죽었다 살아나는 듯이 한번 눈을 깜박 하고 진저리를 친
다. 그러고는 집 생각과 평양 생각, 형식의 생각이 쑥 나온다. 그러나 조곰씩조곰씩 나오다가는 얼른 스러지고 또 여전
히 꿈꾸는 사람같이 된다.
그러다가는 혹 청량리의 광경이 (눈에) 보인다. 그 짐승 같은 사람들이 자기의 손목을 잡아 끌던 생각이 나고는 혀로
입술을 빨아 본다. 조곰 힘을 들여 빨면 짭짤한 피가 입에 들어온다. 그러면 그 피 맛을 보는 듯이 가만히 입을 다물
고 한참 있다가는 만사를 다 잊어버리려는 듯이 한번 고개를 흔들고 침을 뱉고는 아까 모양으로 메와 들을 바라본다. 바
람이 영채의 머리카락을 펄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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