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ek · 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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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eur: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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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형식은 그렇게 이 무덤을 보고 슬퍼하지는 아니하였다. 형식은 무슨 일을 보고 슬퍼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즐거웠다
. 형식은 죽은 자를 생각하고 슬퍼하기보다 산 자를 보고 즐거워함이 옳다 하였다. 형식은 그 무덤 밑에 있는 불쌍한
은인의 썩다가 남은 뼈를 생각하고 슬퍼하기보다 그 썩어지는 살을 먹고 자란 무덤 위의 꽃을 보고 즐거워하리라 하였다.
그는 영채를 생각하였다. 영채의 시체가 대동강으로 둥둥 떠나가는 모양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슬픈 생각이 없었
고, 곁에 섰는 계향을 보매 한량없는 기쁨을 깨달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형식은 혼자 놀랐다. 내가 어느덧에 이대도록 변하였는가 하였다. 형식은 너무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두
주먹을 쥐었다. 형식은 어저께 영채의 편지를 보고 울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슬퍼하였다. 그러고 밤에 차를 타고 올
때에도 남모르게 가슴을 아프고 남모르게 눈물을 씻었다. 더구나 아까 경찰서에서 영채가 아주 죽은 줄을 알 때에 형식
의 몸은 마치 끓는 물에 들어간 듯하였다. 그러고 계향의 집을 떠나 박선생의 무덤을 찾아올 때에도, 무덤에 가거든 그
앞에 엎드려 실컷 통곡이라도 하리라 하였었다. 그리하였더니 이것이 웬일인가. 은사(恩師)의 무덤 앞에서 억지로라도
눈물을 흘리려 하였으나 조곰도 슬픈 생각이 아니 난다. 사람이 이렇게도 갑자기 변하는가 하고 혼자 빙그레 웃었다.
계향은 형식의 모양이 수상하다 하였으나 알아보려고도 하지 아니한다.
형식은 이렇게 살풍경(殺風景)한 곳에 오래 섰는 것보다 계향의 손을 잡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걸음을 걷는 것이
좋으리라 하여,
"자, 갑시다" 하였다. 계향은 이상하다 하는 듯이,
"어디로 가셔요?"
"집으로 갑시다."
"북망산에 아니 가시고요?"
"거기는 가서 무엇 하오? 가면서 이야기나 합시다. 영채 씨가 여기 왔던 형적이 없으니까 아마 아무 데도 아니 왔던
게지요" 하고 계향의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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